태현준범-키스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방
개인적인 캐해석, 맞춤법 이외의 퇴고 x
욕망 덩어리😋
좌악-!
편준범은 제 손에 들린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찢고, 겹치고, 다시 찢고, 겹치고. 손가락을 올리기도 버거울 정도로 작아진 종이는 몇 겹이나 되는지, 너무 두꺼워 찢기조차 힘겨웠다. 그쯤 되면 분이 풀릴 법도 하지만, 편준범은 아니었다. 편준범은 결국 화를 못 참고 요리 부원들에게 식탁 대신 식판을 엎었을 때처럼 종이를 하늘에 흩뿌렸다. 새하얀 직사각형의 방 안에 갈기갈기 찢긴 종이가 흩뿌려졌다.
"준범아, 여기 또 있는데."
"으아아악-!!! 도대체 뭐야, 이것들은?? 올리비아가 얘기해준 괴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니, 이건 괴담 이상이야! 재앙 그 자체라고!!"
"...너무하다."
방금 찢어버린 종이와 똑같은 내용을 담은 종이가 침대에 팔랑팔랑 내려앉았다. 따로 종이가 들어올 틈이 없음에도 편준범이 종이를 찢을 때마다 어디선가 똑같은 종이가 새로 생겨났다. 도대체 몇 장을 찢은 건지, 바닥은 종이 쪼가리의 산이었다. 역시 이쯤 되니 아무리 화가 나도 지치긴 하는지, 편준범은 제 머리 위에 쌓인 종이를 털어낼 새도 없이 침대에 머리를 파묻었다.
[키스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방]
종이에 쓰여진 간단명료한 문장.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에겐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왜 이 녀석이냐고~!!"
"다른 사람이라면 하겠단 뜻으로 들린다?"
"적어도 넌 아냐!! 왜 내 첫 키스 대상이 남자, 그것도 정태현 너냐고!"
쓸데없이 푹신한 침대를 퍽퍽 치며 편준범은 얼굴을 파묻어 뭉개진 발음으로 소리쳤다. 혹시라도 문을 부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온갖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냥 키스하자니까?"
"우쒸, 넌 입 좀 다물어라."
천재들은 항상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다던가, 종이의 글을 읽는 순간 바로 입술부터 돌진해 오길래 이불로 김밥말이를 만든 지 오래였다. 하지만 정태현은 개의치 않고 갑자기 갇힌 상황에서도 도대체 왜 있는 건지도 모를 침대에서 태연하게 뒹굴거리며 편준범의 신경을 긁을 뿐이었다.
"근데 은근 좋은 듯? 이대로 결석하면 어당편 안 하는 거 아냐? 여기 침대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다 있잖아."
"넌 이 상황에 넌 농담이 나오냐?"
"뭐 어때~ 어차피 나갈 방법도 있고."
"농담 말고 나갈 방법이나...뭐?"
편준범이 눈을 크게 뜨곤 고개를 돌려 정태현을 바라봤다. 정태현은 꾸물꾸물 이불속에서 빠져나오며 웃었다.
"컴퓨터가 있잖아? 나 뭐하는지 알면서 그래."
"변태같이 전교생들 정보 훔쳐보는 그거?"
"...이왕이면 해킹이라고 해줄래?"
하지만 정태현의 해킹 실력이 학생들 정보만을 훔쳐보는 수준만이 아닌, 학교 네트워크를 넘어기밀 문서까지 해킹하는 수준이라는 건 편준범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편준범은 정태현이 평소처럼 저에게 장난치는 것은 아닐지 의심하며 미심쩍은 눈으로 정태현을 쏘아보았다. 그것을 느꼈는지, 정태현은 컴퓨터를 켜며 편준범에게 설명해주었다.
"정말이라니까? 네가 종이를 찢는 족족 새로운 종이를 넣어준다는 건 이 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거잖아? 설마 직접 문을 열어줄리는 없고, 원격으로 열어주거나 하겠지. 내 컴퓨터가 아니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 정도는 누워서 콜라 먹기라고."
"진짜로??"
"그럼 내가 거짓말하겠냐? 큭큭."
장난은 좀 치겠지만. 뒷말은 말해주지 않은 채, 정태현은 키보드를 두들겼다. 편준범은 해킹에 관련된 건 아무것도 몰랐기에, 긴장한 채로 모니터를 간절히 바라보았다.
"...헐."
"헉, 뭐, 왜? 뭐, 뭔가 잘못됐어??"
"해킹 실패함."
"뭐?? 할 수 있다며!!!"
편준범은 당황하며 정태현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정태현은 미동도 않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진짜 네 말대로 마법 같은 공간 아닐까? 종이도 막 갑자기 생겨나고."
"!!"
"어떡하냐. 여긴 산소 구멍도 없어서 못 나가면 산소 부족으로 죽을 텐데."
"!!!"
"천천히 숨을 쉬기 힘들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다, 머리가 울리고, 기절하고 영영 못 일어날 거야."
"!!!!!"
"산소가 충분하다 해도 물과 음식이 없으니... 3일도 채 못 버틸 거야."
정태현의 말이 이어질수록 편준범의 얼굴이 점점 사색으로 물들었다. 편준범은 제 미래를 상상하기라도 한 건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겁이 많은 편준범이 공포에 질리는 걸 본 정태현은 손으로 제 입을 가리곤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다 장난이지만ㅋㅋ 내가 겨우 이것 하나 못 해낼 리가 없잖아?
그러나 평소 편준범을 놀리는 맛에 사는 정태현이었다. 해킹이야 진작에 끝냈으며, 시간이 평소보다 오래 걸린 건 심각한 표정을 한 채 간절하게 모니터를 쳐다보는 편준범을 더 놀리고 싶어서였다.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웃음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게 필사적으로 허벅지를 꼬집었다.
"...정태현?"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바람소리와 웃음에 떨리는 몸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편준범이 걱정 섞인 목소리로 정태현을 불렀다. 그것마저 웃겼던 정태현은 이대로 대답했다간 바로 웃음이 터질 것 같아 입술을 깨물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 탓에 편준범의 오해는 더욱 가중되었지만.
곁눈질로 어쩔 줄 몰라하는 편준범을 보곤 실컷 웃던 정태현은 더 이상 했다간 정말로 편준범에게 국자로 맞을 것 같아 조용히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어당편, 사실-"
"후우... 정태현, 진짜 미안해."
둘의 말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정태현의 말은 편준범의 말에 묻혀버렸다. 갑자기 제게 사과하는 편준범을 의아하게 여기며 정태현이 고개를 들자, 망설임이 묻어나는 손이 정태현의 얼굴을 조심스레 감쌌다. 갑작스런 스킨쉽에 당황한 정태현이 편준범을 바라보자, 편준범이 이마를 맞대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키스하면, 나갈 수 있는 거지?"
저를 똑바로 응시하며 물어오는 편준범에게, 정태현은 숨을 삼켰다. 목구멍에 무언가가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장난이라고, 그냥 열 수 있다고 말해야 하는데. 너무 당황해서일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밀어내기라도 해야 하는데. 움직이라는 몸은 안 움직이고 심장이 신체의 모든 활동을 떠맡은 것처럼 미치도록 뛰었다. 신경이 모두 편준범에게 쏠린 것만 같았다. 숨을 참고 있어서인지 머리는 새하얘졌고, 편준범이 닿는 곳마다 불이 난 듯 피부가 뜨거웠다. 그 와중에도 시선은 편준범에게 고정되어, 그의 표정, 시선, 거리까지 하나하나 생생하게 머리에 박혔다. 마침내 입술이 스치는 순간,
쪽
편준범은 각도를 틀어 정태현의 입술 바로 옆에 입을 맞췄다. 키스는커녕 뽀뽀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저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을 뿐인 입맞춤였다.
"그, 키, 키...스란 게, 꼭 입으로만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볼, 볼 뽀뽀도 키스고??? 뽀뽀가 영어로 키스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기분 나빴다면 미안... 그래도 그, 죽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싶어서...."
편준범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횡설수설 말을 늘어 놓았다. 단숨에 편준범에게 쏠려 있던 신경이 풀려버린 탓일까, 정태현은 주르륵, 책상으로 미끄러졌다. 분명 뽀뽀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입맞춤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정태현의 심장은 속도를 올리면 올렸지, 늦추지는 않았다. 어찌나 크게 뛰는지, 귀 바로 옆에 최대 볼륨으로 스피커를 틀어 놓은 것처럼 심장 소리가 들렸다. 여태껏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듯, 정태현은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달칵
미끄러지며 눌러버린 해킹의 마지막 코드 탓인지, 아니면 둘을 이 방에 가둔 원흉이 그것을 키스로 인정하고 열어준 것인지. 굳게 닫혀있던 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 열렸다, 드, 들었지, 정태현??? 빨리 나가!! 아니, 이게 아니라, 나가자...!"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을 감출 생각조차 하지 못한 편준범은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문으로 발을 돌렸다.
탁
"무, 뭐야?? 왜 잡아??"
정태현은 저도 모르게 편준범의 팔을 잡았다. 실수였기에 평소라면 농담으로 넘어갔겠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정태현은 알고 싶었다. 심장이 이렇게 뛰는 이유를. 편준범을 잡은 이유를. 지금 제 목에 턱 걸린 감정의 정체를.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태현은 이미 여러번 이 감정을 삼켜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놨었으니. 그러나 이번만큼은, 감정을 삼키는 대신 내뱉기로 했다.
"...나는."
"어??"
"...나는, 못 들었는데."
정태현은 편준범을 끌어당기며, 빈 손으론 새로운 코드를 짰다. 이미 한 번 열었다면, 닫는 건 더 쉬웠다.
달칵
"역시 해야 하는 것 같은데, 뽀뽀 말고 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