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로우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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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로우 조각

갑자기 흐린 바다가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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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로 몇 번이나 지운 듯 흐린 하늘은, 물에 흠뻑 젖었다 말린 종이처럼 보풀이 잔뜩 일어 있었다.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자, 그 위에 자욱하게 낀 안개가 파도처럼 몰려오는 것 같았다. 제가 서 있는 바위는 단단하지만 바다에 삼켜질 만큼 낮은 곳에 있어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바늘 하나 지나갈 만큼 작게 구멍이 뚫린 하늘에서 잘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바람은 동화 속 이야기에 나오는 심술쟁이처럼 자꾸만 모자를 벗기고 싶어 안달이었다. 계속해서 귓가를 때리는 바람 탓에 귀가 조금 먹먹해졌지만 이 느낌조차 마음에 들어 손을 뻗어 피부를 소나기에 적셨다. 바람이 소매 사이로 몰아치고, 강한 바람에 부서지고 또 부서지는 바다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발 바로 아래까지 닿은 파도는 제 힘을 다 써버렸다는 듯 단말마처럼 새하얀 거품을 만들어내곤 사라졌다. 언젠가 본 동화 속 인어 같다고 생각했다. 발에 차이는 돌덩이는 어찌나 단단한지, 파도에 계속 깎아 내려졌음에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검은색 바위 위에서 내려오니 물에 흠뻑 젖어 색이 탁해진 모래가 구두 끝을 더럽혔다. 해변가에 어울리지 않는 구두의 굽을 세워 모래를 팠다.

 

"이제 가시게요?"

"아니, 좀 더."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말 듯 파도와 모래의 경계선을 위태롭게 걸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거리가 벌려지자 조금 전까지 제가 서 있던 검은색 바위 위에서, 내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따라 내려온다. 그보다 키는 크지만 그보다 작은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남자는 묵묵히 뒤를 지킨다. 하얀색 작업복이 비에 젖어 회색 빛을 뗬다. 차가운 온도에 코 끝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그는 내색 하나 하지 않으며 해변가를 따라 걷는 나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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